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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용정의 일송정과 '어떤'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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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중국 지린성 룽징시 비암산 정상에서 만난 일송정.(사진=김기성기자)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중국 지린성(吉林省) 룽징(龍井)시의 비암산 정상. 한 그루 소나무가 우뚝 서서 굽이치는 해란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선구자’에 나오는 일송정(一松亭)이다. 일제 강점기 항일투쟁의 역사와 정신이 고스란히 배인 한민족의 숨결이다.
 
일송정에서 20여 미터 내려오다 보면 비슷한 모습의 또 한 그루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관리가 전혀 안 된 탓에 일송정의 청아함과 푸름은 느낄 수 없다. 나무 옆에는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가득하다. 보는 이의 눈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
 
바로 옆에는 기념비가 있다. 1999년 7월9일 일송정 방문을 기념해 소나무를 식수한 뒤 비를 세운 것으로 표기돼 있다. GS칼텍스 대표이사 회장을 선두로 경일석유, 부일석유, 대성산업, 삼남석유 등 정유업계의 굵직한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등 일행은 지난 1999년 일송정 방문을 기념해 식수를 심고 그 옆에 방문 기념비를 세웠다.(사진=김기성기자)
 
기자를 안내하던 연변조선족 동포가 한마디 던진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조선족인 게 부끄럽습네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리고 서둘러 고개를 돌린다. 눈에는 분노와 슬픔이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그랬다.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일심으로 먼 이국땅을 찾았던 독립투사들의 발길이 서린 곳, 그 역사의 현장이 고국에서 온 '돈많은' 동포들에 의해 욕보이고 있었다. 이곳을 찾고, 그 뜻을 기리고자 하는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굳이 식수를 하고 비에 이름을 새겨넣어 흉물로 방치되게 하는 건 역사의식의 부재를 넘어서는 일이다. 
 
일송정은 쉽게 버리고 잊을 대상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 속 고향이다. 
 
비암산 정상에 독야청정 서서 고국을 바라보는 일송정은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의 애틋함이었으며 독립을 향한 올곧은 의지였다. 일제는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일송정에 위해를 가해 1938년 결국 고사시키기에 이른다. 항일 무장투쟁의 본거지였던 연변의 정신적 상징을 없앤 것이다.
 
1991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는 한국 각계의 도움으로 옛 자리에 소나무를 다시 심어 복원하고, 정자를 신축해 그해 9월 준공했다. 이후에도 여러 도움의 손길이 이어져 확장 및 보수가 이뤄졌으며, 룽징시 문물관리위원회는 보호문물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현재는 룽징 8경의 하나로 꼽힌다.
 
지린성을 찾는 한국인들이 빠지지 않고 들리는 곳이 바로 백두산과 일송정이다. 바로 그곳에, 또 하나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있었다.
 
◇중국 지린성 룽징시 비암산 정상에 위치한 일송정 정자.(사진=김기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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